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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 2012년 5월 어느 맑은 오후. 사진을 보면 대번에 기억 날 만큼 생생했던 행복감. 온전히 행복했던 기억들이 늘 나를 버티게 한다. 더보기
세 번째 살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보았다. 우리는 늘상 스스로를 폄하한다. 물론 스스로에의 애정이 솟구치는 이들도 많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어떤 순간에는 스스로가 회색 먼지 같단 생각을 했을 거다. 회색 니트의 보푸라기, 증정용 수건의 뭉친 먼지, 겨울 부츠에 달라붙은 검딱지 같은 나를. 하지만 그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씩씩하게 오늘을 맞이하는 것은 언제고 다음 순간 한번쯤은 빛났던 기억 때문이겠지. 노을빛 강가에 내리쬐는 반짝임, 흰눈이 나리는 가로등 불빛의 눈부심, 나를 바라보는 이의 애정 어린 눈망울, 따뜻한 햇살 아래 흩어지던 웃음들. 불행과 행운의 양이 결코 공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이 지난 언젠가는 반드시 행운이 찾아온다는 믿음이 우리를 버티고, 일으키고,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경험에서만 우.. 더보기
그믐 그믐을 읽었다. 표백을 시작으로 네 번째 장강명이다. 권희철 평론가의 심사평처럼, 그는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이름으로 세밀한 글을 쓴다. 오랜만의 이틀 휴일 사이 - 새벽 세 시에 책을 덮고 불을 켰다. 생각들은 순간에만 머문다는 것을 알기에 그 순간을 기록으로라도 남겨야 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이 책을 산지는 좀 되었다. 산지 얼마 안 되어 문학동네 팟캐스트를 들었고, 정말 좋았지만 왜인지 다 읽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제 잠이 안 와 들여다본 책장에 이 책이 가장 얇아뵀다. 솔직히 그래서 집어들었고, 덕분에 완독했다. 내가 아까 우리 중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죠? 그런데 현재를 제대로 보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사람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미래에.. 더보기
최선에 대한 고민 원칙을 지키면서 융통성있게 개개인의 심정과 사정을 헤아리기는 정말 불가능한 걸까? 모두의 사정을 봐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결국은 아무의 사정도 봐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게 최선일까 싶은 의문과 회의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열번을 잘해도 한번 틀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거늘. 무수히 많이 겪었으면서도 매번 마음이 무겁다. 그게 스스로를 위한 죄책감에 불과할지라도. 더보기
12월 14일 월요일 오랜만에 노력해보고 싶어졌다고 - 그 말이 진실되게 느껴졌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든지 너랑은 다를 것 같다든지 하는 말들은 두렵다. 상대의 기대에 부응할 자신도 노력할 여력도 없으니까.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정한 현실 사이에서, 미칠듯이 가슴 뛰고 설레는 순간을 기대하는 대신 지친 와중에도 웃음 짓게 하는 일상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 말이 더 고마웠다. 그 노력을 충분히 느끼고 있기에 더욱. 연애를 하는 데에 얼마나 큰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지 알기에 또 더욱. 그러니까 믿어보기로 한다. 나도 노력해보기로 한다. 더보기
생각할 지점 "건강하지 못한 어린시절을 보내면 너의 모든 잠재력을 펼치기 어렵단다. 음식과 집을 염려하거나 학대나 범죄를 당할까 걱정한다면 말이지. 피부색 때문에 대학이 아니라 감옥에 갈까 두려워하고, 혹은 네 법적 지위 때문에 가족이 강제추방될까 두려워하면, 그리고 종교나 성적 지향, 성적 정체성 때문에 폭력 피해자가 될 것을 두려워한다해도 마찬가지이지." "우리는 우리의 몫을 할 거야. 너를 사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모든 아이들에게 도덕적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모든 생명은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미래를 살아갈 세대들은 더더욱 그렇다고 우리는 믿어. 우리 사회는 이미 여기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앞으로 이 세계에 올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 투자할 의무가 있는 것이지." http:.. 더보기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Coldplay - A sky full of stars (https://youtu.be/zp7NtW_hKJI) 1990년 2월 14일. 우주를 떠돌던 탐사선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반짝이는 작은 점이 찍힌 사진 한 장을 지구로 전송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떠나온 고향, 지구였습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 모습을 PALE BLUE DOT '창백한 푸른점'이라 표현했습니다. 사진 속 지구는 외로워 보입니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 안에서, 희미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기도 하지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넓은 은하계 한구석 희미하게 웅크린 창백한 푸른 점 하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희미한 점은 그저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질량을, 한없는 밀도를, 무한한.. 더보기
이야기 자판기 http://m.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39278&ref=m.facebook.com 더보기
10월 26일 월요일 오랜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허물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웃고 떠든 게 얼마만인지. 각자의 변화에 대해 부끄러운 자기 고백을 털어놓으면서, 다시 열다섯 내가 됨을 잠시나마 느꼈다. 오늘 하늘의 달이 초생이었는지 그믐이었는지, 하다못해 손톱이었는지 보름이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나날들. 하루에 한번은 하늘을 보겠노라고 - 열일곱 지구과학 수업에 했던 다짐이 무색하다. 요즘의 나는 허물이 겹겹이라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 하루를 보내고도 집에 오면 허전함에 폭삭 주저앉곤 했었다. 신변잡기와 드라마 얘기로 점철된 대화들에 다소 지쳐있었다. 내가 건네는 얘기들도 결국 뚜찌빠찌인 주제에. 사람들과 나 사이에 어느샌가 벽이 생긴 것 같았다. 내가 만든 벽이든 상대가 만든 벽이든. "나는 누군가의 .. 더보기
사울의 아들 사울의 아들 보았다. 오늘 종일 본, 영화제 기간 본 영화들 중 가장 강력하다. 소재의 영향이 크지만 그 표현력과 주제를 이끌어가는 힘 또한 엄청나다.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타이틀이 뜨는 순간까지, 숨을 쉬기도 어렵다. 그리고 바로 그때문에 개봉은 어렵지 않나 싶다. Is he one of yours? Even then. You don't need it. 처음의 지칭이 '그'였는지 '그것'이었는지는 명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지칭이 무슨 상관이랴 사울에게든 관객에게든. 어떤 대상 - 집착의 대상, 경외의 대상, 삶을 관통하고 지탱하는 집념과 목표는 그 자체만으로 그 존재를 증명한다. 존재함으로써 존재하게 하는 것. 엔딩 크레딧 직전 스크린을 꽉 채운 사울의 얼굴과 곧이어 있던 시선 전환의 의미는 내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