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07 02:16
꼭 일주일 전에, 드디어 봄이 왔구나 싶을 정도로 갑작스레 날이 좋아졌었다. 이모를 만나러 가는 길 쨍쨍한 햇살에 나도 모르게 신이 났다. 이모를 주려 길가 꽃집에서 예쁘게 핀 꽃을 한 단 사고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햇빛 쨍쨍한 봄날 오후 길가를 걸었다. 이모집에 가려면 제기동에서 집 앞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는데 평소엔 걷는 게 귀찮아 멀지않은 거리건만 꼭 택시를 타곤 했었다. 하지만 봄이 왔고, 오후의 햇살은 쨍쨍하고, 마침 운동화도 신었고, 무엇보다 몇 시간이고 걸을 수 있을 만큼 기분이 좋아 그날만큼은 걸었다. 20분쯤 되는 거리를 걸어 정류장에 도착하고서도, 다음 정거장 또 다음 정거장까지 걸었다.
꽃을 한아름 안고 가는 나를 사람들이 어딘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꽃을 들고 버스 맨 뒷자석에 앉아 있으려니 엄마 품에 안겨 내 옆에 앉은 아이가 꽃잎을 만지작 만지작 거렸다. 줄기가 길어 잘 빠지지 않는 꽃을 한 송이 뽑아 아이 손에 안겼다. 아이 어머니가 "웬 꽃이에요?" 하셔서 "아, 그냥 날씨가 너무 좋아서요." 했더니 하하하 웃으셨다.
이모 집에 와 화병에 물을 주고 꽃을 꽂았다. 평소엔 누나 괴롭히기에 여념없던 10살난 사촌동생이 그날따라 유난히 내 말을 잘 따랐다. 꽃을 만지작 만지작, 물을 제가 주겠다며 성화, 누나 누나 이 꽃 이름은 뭐야 하며 졸졸, 웬일로 뭘하든 누나 누나 했다. 이모가 "넌 아직 젊다, 정말." 하며 호호 웃었다.
아,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 날 꽃 한 단을 사들고 얻을 수 있었던 그 행복으로 하루하루가 가득 찼으면 좋겠다. 나는 그때 정말 너무너무 행복해서 매순간이 꼭 지금과 같았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꽃을 사들고 따스한 봄날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한적한 길가를 운동화를 신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걸어가는 길은 정말 너무나도 행복했다.
덧)
내 방 창문 너머 덩그러니 보이는 목련 나무에 목련꽃이 활짝 피었다. 엊그제만 해도 망울만 겨우 맺혔던 놈이 며칠새 활짝 피었다. 학교의 목련도, 진달래와 개나리도 며칠새 활짝 피었다. 내일도 모레도 비가 온다는데 봄비에 축축 젖어 그새 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봄비까지 내린다니 새삼 정말 봄이 왔구나 싶다. 너무나 기다렸던 봄이건만 막상 정말 봄이 와버렸다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쌉싸름해진다. 그새 성큼 봄이 왔다,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