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적기

어떤 경계 - 마크 로스코 단상


경계에 대해 생각한다. 명확히 구분지어진 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서로의 다름에 의해 대비되어 나타나는 경계. 빨강과 초록의 사이처럼. 다름의 정도에 의해 그 경계는 희미하기도 뚜렷하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인식됨으로써 그 존재를 증명한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내게 준 감동은 그 경계에 있다. 우리는 그 대비를 통해 너와 나의,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경계들을 보게 된다. 어떤 존재들은 발견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시사한다. 우리는 캔버스 위에 더불어 존재하고 있음에도, 결국 나타나는 경계로 인해 결코 서로를 완전히 감싸안을 수는 없음을.

그렇게 로스코의 그림을 뚫어지게 보고 있노라면 공간의 확장이 일어난다. 노랗고 빨간 색덩어리 안에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고 보잘 것 없어지는 느낌. 감히 내가 색덩어리의 하나라 느꼈던 오만은 이로 인해 조금씩 좌절되고, 그 다음 순간 "만일 당신이 작품의 색체들 간의 관계만을 가지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면 제대로 작품을 감상했다 할 수 없다" 라는 로스코의 말에 완전히 부서진다.

로스코 채플, 무채색의 경계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금 깨닫게 된다, 먹먹하고 고요한 경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관계들에 대해. 더불어 존재함은 그 자체로 수많은 치열함을 내포한다는 것을.

그리고 점차 다가선 전시의 마지막. 경계는 희미해지나 더 격렬해진다. 그 격렬의 끝에서, 나는 색체의 울부짖는 생명력에 짓눌려 결국 울어버리고야 말았다. 오직 색체들 간의 관계만을 가지고서. 제대로 작품을 감상했다 말할 수 없음에도 - 당신에의 경외와 그 사무치는 심정으로.

'- 적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덜리스  (0) 2015.07.22
인사이드 아웃  (0) 2015.07.12
엘리펀트 송  (0) 2015.06.13
쓰다만 일기  (0) 2015.05.27
제목없음  (0) 2015.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