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여름밤이다. 요며칠은 계속 비가 내렸다. 비오는 밤길을 무거운 책을 들고 걸을 자신이 없어 택시를 탔다. 멀미를 했다. 집에 와 저녁을 게웠다. 머리가 띵해오는 걸 느끼며 몇 걸음 못 가 방바닥에 뻗었다. 천장이 빙빙 돌았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오는 여름날의 밤공기가 그리웠다. 비 냄새를 맡고 싶었다. 창문을 열었다. 비가 들이찬다. 내 오래된 기타에 빗물이 뚝뚝 흐른다. 오랜만에 기타를 매만지다 왈칵 서러워졌다.
열렬한 애정을 맹세하며 기어코 사들였던 기타였다. 그러나 내 사랑은 짧고도 희미했다. 내 열망은 소유에 다름아니었다. 미안함에 울지언정 그 눈물은 스스로를 위함이니. 연인을 인연이라 믿어내는 이들을 동경했다. 연인을 옆에 두고도 인연을 열망하는 스스로가 미웠다. 내 사랑은 환상에의 열망에 다름아니었다. 문장을 하나 써놓고 수십 번을 지우는 이들을 존경한다. 내 글은 기어코 이쯤에서 멈출 것이다. 뒤돌을 것이다. 나를 떠날 것이다. 내 열망을, 끝내 앗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