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성실의 덕목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별 과제에서는 단언코 불성실해본 일이 없었다지만, 그건 성실함이라기보단 책임감의 문제였고 내 스스로의 영향 아래 놓인 일들, 과제들, 수업들에는 언제나 미적지근이었다. 밤새는 버릇이 든 것도 어릴 적부터 벼락치기가 습관이 되어 있던 탓이다. 어렸을 때의 나는 똑똑하단 말 듣기를 참 좋아했다. 게으른 천재를 동경했다. 투입 대비 산출이 중요했고, 과정보다는 결과에 만족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운 좋게도, 그 시절엔 그러고도 곧잘 어찌저찌 수습하며 내가 탐내던 이미지들을 잘 얻어낼 수 있었다. 이제와 고백컨대, 나는 진실로 내가 게으른 천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시절엔 그래도 되었다.
대학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성실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나는 투입 대비 산출로 자위하며 안주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루 아침의 일이었다. 불성실의 도가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성실해지지 않았다. 아니, 이제 그럴 수가 없었다. 오랜 타성은 나를 이미 가득 채워 흘렀다. 나는 이제 그저 게으른 껄렁이에 불과했다. 성실과 정직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시는 나의 어머니는 이런 나를 늘 못 미더워하셨다. 언제나 충고하셨다. 부지런함이 몸에 밴 두 분 부모님은 가끔은 진정으로 나를 안타까워하신다. 이해할 수 없어 하신다. 나는 그런 두 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제야 내가 성실의 힘을 뼈저리게 깨우치는 이 시점에, 성실, 내가 가장 경시하던 덕목이 이제 나를 경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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