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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기

가을의 한중간


  가을의 한중간이 성큼 다가온 듯 하다. 며칠 전부터 꽤나 쌀쌀맞아진 바람에 절로 고개가 움츠러들었다. 어지간하면 이젠 적응할 법한 나이건만 여전히 나는 계절이 바뀌는 이 시간들이 낯설다. 어제와 오늘의, 저번 주와 이번 주의, 작년과 올해의 급격한 변화들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고 또 여전히 반갑지만은 않다. 바람에서든 나뭇잎에서든 무언가 변화가 있다는 건 그만큼 나에게도 예측할 수 없을 변화가 있었거나 있거나 있을 거라는 것이고 또 그건 내게 또 다른 적응을 요구할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두렵진 않지만 시간이 가는 것은 두렵고, 적응이 어렵진 않지만 성장해야 하는 것은 어렵다.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은 뉘엿뉘엿 해를 따라 저마다 제집을 찾아가는데 나는 아직 쌓다만 모래성에 미련이 남았다. 조금 더 근사한 성을 만들어보려 미적대다 보니 주위는 어둑해지고, 까만 어둠에 놀라 보잘것없는 성이라도 움켜쥐려다 그만 - 부서져나렸다. 어찌할바 몰라 눈물이 찔끔 나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데리러 오질 않는다. 엄마는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내가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이렇게 어둠에 질려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다고 해서 날 데리러 와줄 이는 이제 아무도 없다.

  어둠에는 다시 어둠이 깔리고 날은 점점 추워진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선뜻 일어날만한 용기가 나질 않는다. 한줌 모래를 움켜쥐고 부서진 성 한 번 바라보다 어둑해진 너머 따뜻할 나의 집을 한 번 바라본다. 다시 부서진 성을 바라보고 한줌 모래를 꽉 움켜쥔다.

  나는 그렇게, 한줌 모래를 움켜쥐고 저 어둠 너머를 바라보며 그대로 오도카니 앉아 이 밤을 지새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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