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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기

온갖 사소한 것들


사람들은 온갖 사소한 것들에 목을 매곤 한다. 가령,
웃을 때 찡긋거리는 코라든가 집중할 때의 미묘한 입꼬리, 생각에 빠진 까만 눈동자, 초조할 때의 정신없는 손놀림, 같은 노래에 빠져있던 순간의 행복한 표정 같은 것들 말이다. 이렇게나 사소한 것들에 빠져 한참을 허우적거리며 고통받곤 하는 거다. '이렇게나 사소한 것들이라니, 우습기도 하지.' 하지만 나는 사소한 것들을 믿는다. 내가 했던 모든 사랑은 그런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 각양각색의 사소한 것들에 빠져 허우적대다 보면 그의 얼굴이, 그의 모습이, 그의 버릇이, 그의 취향이, 그의 모든 것이 내 이상형이 되어버리곤 했다. 의식하지도 못한 새 인식하지도 못했던 사소한 것들을 의식하게 되면서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몇번이고 거치면서도 나는 내 그 사랑들이 사소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나고보면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사소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가 떠날 때 쯤이면 나는 그의 온갖 사소한 것들만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소한 것들로 인해 사랑에 빠졌다고 해서 비웃는 사람은 아직 사랑에 빠져보지 못한 사람이다. 모든 사랑은 온갖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 사소한 것이 그 또는 그녀였기에 비로소 인식될 수 있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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