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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기

삼우제

삼우제를 치르고 서울에 돌아왔다. 사촌동생에게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동생의 엉엉 우는 소리에도 나는 왜인지 담담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나보다도 담담했고 그래서 나는 여러 사람과의 몇번의 통화에도 끝까지 울지 않을 수 있었다. 짐을 싸면서 울음이 터지긴 했지만 곧 마음을 추스리곤 전화기 너머 울음을 그칠줄 모르는 동생을 다독였다. 택시에 타서도, 동생을 만나 기차를 타서도 나는 담담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추석에 한번이라도 더 할머니 얼굴을 보러 갈걸 하는 동생의 소리에 잠깐 울컥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상외로 꽤 담담할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엄마를 보고서도 울지 않았건만,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마주하자 그때껏 참았던 울음이 한번에 터져나왔다. 영정 사진 속 할머니는 웃고 있었고, 때깔 고운 한복을 입고 계셨다. 그러나 내 마지막 기억 속의 할머니는 많이 야위셨고, 거동을 못하셨고, 웃지 못하셨고, 말씀을 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줄곧 눈을 떠 나를 바라보셨고, 내가 울자 울지말라는 말씀을 너무나 힘겹게 하셨으며, 안정적이던 심박수가 요동쳤고, 손가락을 겨우 들어 내 손을 잡으셨다. 나는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도 많이 울었고, 그럼에도 그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일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연휴 4일을 고향에 있으며 매일 병원에 들러 매일을 울었지만 그럼에도 내 휴일을 위해 하루 먼저 서울에 왔고, 나는 할머니를 하루 더 보지 못했다. 그게 너무나 후회가 된다.

사진 속 할머니의 모습은 도대체 언제쯤이었을까. 어쩌면 십여년 전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최근 할머니와 나눈 대화를 생각해본다. 전부 실없는 소리였다. 마음이 아프다. 할머니가 아직은 거동이 가능하시고 말씀도 잘 하시던 때, 할머니 손등에 뽀뽀를 해드리니 수줍어하셨던 기억이 새삼 난다. 나를 많이 보고싶어 하셨다고, 추석 연휴 내내 내가 병원에 갈 때마다 힘겹게 눈을 뜨시곤 내내 날 바라보셨던 기억도 난다. 울지 말라고, 정말 힘겹게 힘겹게 잡으시던 손가락, 눈동자, 심박수. 나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아직도 생생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장례 내내 거진 천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 그중 몇이나 우리 할머니를 아실까 싶었다만, 너무나 슬피 우시는 몇몇 분을 보며 내가 모르는 할머니의 다른 인생들을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할머니는 그냥 우리 할머니였고, 우리 엄마의 엄마였고, 나를 강아지라고 불러주셨고, 내가 "할머니" 하고 부르면 항상 버선발로 뛰어나와 "내 새끼 왔는가" 하는 분이셨다. 그것 말고는 아는 게 많지 않았다. 나는 27년간 할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할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기억만이 생생하다. 철없이 엄마에게 투정부리며 짜증낼 때 거실의 할머니가 어떤 기분이셨을지 이제야 짐작해본다. 설에 친정엘 못가고 눈치보는 숙모가 안되보여 "나중에 나 시집가서 명절에 할머니 보러 못오면 어쩌려 그러냐"고도 했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이제 할머니 보러를 못 간다. 나는 못되쳐먹었다.

오늘은 삼우제였다. 할머니를 뵈러 발인하고 처음 산소에 갔다. 줄지은 나무에 딱따구리가 한마리 앉아 울어댔다. 다같이 서서 딱따구리를 보았다. 나는 딱따구리를 처음 보았다.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다같이 앉아 쉬다 문득 이모가 딱따구리를 찾았다. "가버렸구나, 나는 우리 엄마가 우리 보러 오셨나 했더니만". 딱따구리를 보면 나는 이제 슬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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