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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기

내 어린 천사

동생과 한바탕 퍼붓고난 밤이면 잠든 동생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20년전 우리집에 왔던 천사를 떠올린다. 옆에 가만 누워 몇시간을 들여다봐도 통 질리질 않던 그 천사의 얼굴을, 내 손가락을 꽉 움켜쥐던 그 조물거림을, 힘겹게 눈을 뜨곤 이내 다시 감아버리던 새침함을, 만지면 닳을까 어디가 아플까 무서워 어쩔 줄을 모르던 날들을. 동생이 갖고싶다고 생떼를 쓰며 울어댔다던데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물론 잠시. 언성 안 높이고 험한 말 안 쓰려는 노력을 "그게 더 짜증나" 라고 일갈해버릴 때의 무력함과 좌절감. 잠든 얼굴은 아직도 그렇게 천사같은데, 집에 온 내 손에 들린 간식 한봉다리에 슬몃 웃는 것도 사랑스러운데.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 사랑해. 나한테 화나도 항상 한번 더 참아줘서 고마워. 참다 못 참아 화를 내도 그날밤 당장 먼저 미안하다고 해줘서 고마워. 실은 나도 항상 미안했어. 종아리 몇대 맞을래 해서 다섯대요 할 때 나중 두어대는 살살 때려주어 고마워. 성적표 몰래 숨겼을 때 아빠한텐 끝까지 비밀로 해줘서 고마워. 동생 낳아줘서 고마워. 엄마 마음 미리 한번 겪어보라고 그런거지? 나 쌤통인가봐. 미워죽겠는데 또 이뻐죽겠어. 그게 제일 고마워 엄마." 잠든 동생 손에 들린 핸드폰을 빼 가만 옆에 두고, 자세를 바로 해주고, 뭔가 또 아쉬워 머리카락을 정리해준다. 아침이면 내 방 불이 어김없이 꺼져있던 이유를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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