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다짐
어릴 적부터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하는 일들을 끔찍이도 좋아했다. 수업시간에도 수업은 뒷전이고 매번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다 걸려 혼나곤 했다. 언젠가부터는 잠도 잤다. 수업에 집중하는 게 참 귀찮았다.
어머니에겐, 언젠가부터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내가 참 마뜩찮으셨으리라. 의무는 뒷전이고 '쓰잘데기 없는' 것들에 목을 메는 딸이 염려스러우셨으리라. 분기마다 걸려오는 선생님들의 전화에 성화에 당신도 답답하고 속상하셨으리라.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나를 경계하기 시작하셨다. 그 미묘한 경계 아래 내가 택할 수 있었던 것은 반항과 비밀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나의 열망과 환상은 더욱 커져만 갔다.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말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내가 쓴 글로 칭찬받던 유일한 시기. 국어교육을 전공하셨다던 그 시절 내 담임 선생님은 내가 써내린 시 한 구절 한 구절을 몇 번이고 반 아이들 앞에서 낭독해주셨고, 내가 봐도 날림인 독후감이며 각종 글짓기 과제들 하나하나에 과한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선생님의 넘치는 칭찬과 편애가, 나는 부담스러우며도 정말 기뻤다. 담임선생님이 쓰는 직업 추천란에 의사, 판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적어주셨던 유일한 분, 내게 작가라는 직업이 어울릴 거라 말해주신 유일한 어른. 나는 그 시절의 행복감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당시 내가 썼던 독후감, 수필, 동화 등의 글감이며 주제들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선생님이 가장 좋아해주셨던, 일년 내내 교실 뒷벽 한가운데 걸렸던 나의 첫 시 몇 구절까지. 그때의 나는 행복했다. 응원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고, 그래서 설렜고, 믿음이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있었다.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론 그런 응원은 다신 없었다. 그 응원은 이제 글이나 그림이 아닌 국어, 영어, 수학의 모의고사 성적에 국한됐다. 잘한다는 칭찬에 유난히 약한 내가 결국 그로 진로를 결정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매일, 매순간, 나는 후회했다. 하지만 돌아갈 방법을 몰랐다. 나는 여전히 칭찬과 응원에 목 말랐으므로, 꾸지람과 날선 반대에 맞설 용기도 의지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매순간 후회했다. 후회한다. 자격도 없는 후회를, 오늘 이 순간에도 나는 한다. 그것들이 내게 점차 멀어질수록 더 아득해질수록 내 모자람을 절절히 느낄수록.
어디선가 보았던 글귀를 되새긴다.
“예술이란, 영화란, 인생이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 놓인 거대한 벽을 조그만 끌을 가지고 천천히,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긁어내는 것이다.”
천천히,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