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기

비가 내리고

정보미20 2010. 6. 19. 23:35
2010.06.19 23:19

갑자기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된 친구와 맛있는 밥을 먹고 유쾌한 영화를 보고 나오던 그 순간 정말 갑작스레 그랬다. 그동안의 기분좋음이 무색할 정도의 갑작스러움으로 모든 기분이 바닥으로 요동쳤다. 영화관에서 나와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스물스물 기어나온 그 기분은 역을 나와 환승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내게 떨어졌던 빗방울만큼이나 갑작스럽고 서늘한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빗방울과 마찬가지로 찐득찐득했다.

올려다 본 하늘은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여름의 잎사귀와 온통 까만 그늘이었다. 나는 무엇에 그리 놀라 그렇게도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었을까. 기억 한켠의 그 얼굴이나 나의 서러울법한 상황이나 나를 힘들게 하는 고민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단지 내 자신의 바로 그 순간 때문이었지 싶다. 안성맞춤으로 나는 우산을 깜박했고 그와 동시에 투둑투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비를 맞으며 걸어오는 동안 점점 더 느긋한 기분이 되었다. 비를 가릴 아무것도 없었던 덕에 오히려 속 편하게 투둑투둑 비를 맞을 수 있었다. 왠지 안정되는 것만 같았다. 울고 싶었던 기분이 점점 더 가라앉더니 오히려 괜찮아졌다.

나는 울음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