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하고도 셋
두 과목 시험을 치르고 기진맥진해 집에 들어왔다. 2시간밖에 눈을 못 붙였던 탓인지 눈두덩이 뜨겁다. 시계는 12시를 향해 꾸물거리며 흐르고 있었고 나의 스물 세번째 생일도 그만큼 꾸물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지나간 이제 다가오는 오늘이 나의 생일이라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였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나의 마음을 움켜잡으려 애를 쓰며 잠시 주저앉은 사이로 끝도 없는 자괴감과 꽤 묵직한 좌절감이 함께 했다. 어둠에 어둠이 쌓이고 나는 여전히 나의 마음을 움켜잡으려 애를 쓰며 그 마음을 따라 어디론가 데구르 데구르 돌멩이가 가득한 흙길을 굴러가고 있다. 내가 지금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알 도리만 있다면야 청춘의 무수한 반항과 방황은 흔적도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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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오늘은 그저 그런 하루였다.
몸과 마음이 지쳐 다가오는 오늘을 기대할 여력마저 없었다. 내게 조금 더 큰 책임감이 주어지는 날이라고 해서 달갑지 않다거나 그래도 괜스레 들뜬다고 해서 달갑다거나 할 겨를도 없이 울컥하는 아둥바둥으로 보낸 하루였다. 말없이도 위안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친구들과의 순간와 함께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과 그리고 해질녘 도서관 앞 잔디밭에 눈물나도록 노랗게 반짝이며 쏟아지던 햇살. 오늘이 그저 그런 하루라도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 햇살 덕분이었다, 그 햇살 덕분에 나는 오늘을 웃으며 견디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용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아직 나는 많은 실패를 경험해 보진 못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실패들이 많았음에도 앞으로 내게 다가올 그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이 너무나 두려웠음에도 문득 어딘가에선 올 테면 오라지 하는 호기가 생긴다. 눈물나도록 노랗게 반짝이는 햇살만 있다면야 무엇이든 맞서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눈물나도록 노랗게 반짝이는 햇살이 길목에든 나뭇잎에든 잔디밭에든 어디에든 내 눈 앞으로 눈이 부시도록 노랗게 쏟아져주기만 한다면야 나는 그 무엇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해내고야 만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던 나의 마음이 슬몃히 손끝에 와닿는 듯 하다. 비로소, 다가온 오늘이 실감이다. 나는 아직 어리지만 더이상 어리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미칠듯이 어리다. 어리고 너무 어려서 지금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을 나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아쉬울 것이 너무나 많은 나이다. 결국은 나 혼자 온전히 떠안아야 할 그 많은 아쉬움들을 내 이 두 팔로 끌어안아보려 아둥바둥 움켜쥐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만으로 22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