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기
기대에 관하여
정보미20
2013. 9. 15. 03:10
나는 언제나, 소위 말하는 '찌질함'을 경계하며 살았다.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주제에 감히 타인에게 그 경계를 날세우며 살았다. 내 연인이 조금의 '찌질함'이라도 지녔다 싶을 때엔 여지없이 정내미를 떼버리곤 했다. 연인이 되기 이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물론 나는 이것이 내 스스로의 찌질함에 기인한 것이란 것을 퍽 잘 알고 있었다. 이 경계는 결국 스스로에의 열등감이었으므로.
그러나, 내 열등 또한 내 자신으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되면서, 나는 이제 '찌질함'을 내비추지 않는 연인을 경계한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나의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각자의 열등을 스스럼없이 내보이고 또 그것마저도 기꺼이 보듬는 두분을 바라보면서, 이전에는 현실과의 타협이라 치부해버렸을 것들에 이제는 깊이 감명받고 있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만나게 될 수많은 인연들 중에서 단 하나 나의 연을 붙잡기도 어려운 터에, 그 연이 내 열등과 자괴와 온갖 '찌질함'마저 보듬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오만이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기대하고 또 실망하고, 그럼에도 또 슬금슬금 기대를 걸어본다. 내 연인이 조금 더 찌질하기를 바라면서, 내 자신이 조금 덜 찌질하기를 바라면서. 내 자신이 조금 더 관대하고, 내 연인이 조금 덜 기대하길 바라면서.
그러나, 내 열등 또한 내 자신으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되면서, 나는 이제 '찌질함'을 내비추지 않는 연인을 경계한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나의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각자의 열등을 스스럼없이 내보이고 또 그것마저도 기꺼이 보듬는 두분을 바라보면서, 이전에는 현실과의 타협이라 치부해버렸을 것들에 이제는 깊이 감명받고 있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만나게 될 수많은 인연들 중에서 단 하나 나의 연을 붙잡기도 어려운 터에, 그 연이 내 열등과 자괴와 온갖 '찌질함'마저 보듬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오만이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기대하고 또 실망하고, 그럼에도 또 슬금슬금 기대를 걸어본다. 내 연인이 조금 더 찌질하기를 바라면서, 내 자신이 조금 덜 찌질하기를 바라면서. 내 자신이 조금 더 관대하고, 내 연인이 조금 덜 기대하길 바라면서.